[2002/01/08][산업/기업, 기획/연재01.08]"디자인은 제품의 핵심가치"
2002/01/08
[기고] "디자인은 제품의 핵심가치"
[산업/기업, 기획/연재] 2002년 01월 08일 (화) 09:53
<류헌진> 백화점 진열대에는 온갖 물건들이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경쟁자 틈에 끼여 소비자의 눈길이 머물러 주기를 바라지만 대부분은 하찮은
관심조차 끌지 못한다. 무언가 색다른 문양, 튀는 색상, 종전에는 보지 못했던 꼴을
지녀야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다.
제품의 기능만으로 소비자의 환심을 사기에는 부족하다. 기능만을 고집하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진열대에 놓일 자격마저 박탈당한다.
이런 의미에서 디자인은 제품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세련된 디자인이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여 준다는 생각은 물자가 귀한 시절에나 통함 직한 시대에 뒤진
발상이다.
디자인은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디자인의 어원인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가 '지시하다,표현하다, 성취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데서도 디자인의 이런 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디자인을 거쳐야
제품은 비로소 자신을 표현하며, 소비자의 만족을 성취한다.
'디자인코리아'를 구현하기 위해선 먼저 디자인을 제품의 핵심가치로 인정할 필요가 있
다.
디자인을 제품에 예술적 속성을 부여하거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세련된 표현기법을
차용하는 정도로 치부하는 한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제품개발이 요원해진다.
이런 뜻에서 디자인 교육체계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디자인
교육은 미대나 예술대에 편재된 채 산업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으나 미국이나 유럽에서
는 예술대 뿐 아니라 공대, 경영대, 사회과학대 등에서도 디자인 관련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디자인이 산업경쟁력의 핵심 과제임을 인식한다면 교육과정에서 현장감과 실용성
을 갖춘 디자이너를 양성해야 한다. 하얀 아그리파의 얼굴을 데생하는 데 한국 디자인
의 미래를 걸게 할 수는 없다.
디자인은 정보화시대의 핵심이라는 점도 간과하기 쉽다. 정보화 시대를이끌 대표적인
산업은 물론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산업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디자인을 도외시한 채 정보화시대를 논의하는 것도 부당하다. 시각디자인을
의미하는 그래픽(Graphic)이란 용어는 '인쇄'라는 단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인쇄물의
대표격인 책이 사람의 눈을 확대한 개념이라면, 오늘날 그래픽의 대상은 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정보'를 의미하게 된다. 실제로 현재 시각디자인은 정보를 시각적으로
디자인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디자인이 정보화시대의 핵심인 점은 디자인이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통용되는 핵심언어
로서 구실한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전세계인을 한국 제품의 소비자로 삼고 있다면 글로벌 언어인
디자인으로 소비자에게 다가서야 한다.
이를 위해 디자인의 글로벌화를 담당할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국가와 기업 디자인
관련단체나 협회, 그리고 디자이너 개개인이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우리 문
화에 기초한 디자인을 개발하고 세계로부터 인정받을 힘을 키울 수 있다.
이를 위해 디자인 관련 업체나 디자이너 개개인이 비전을 가져야 하지만국가적 차원의
전폭적인 정책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디자인 선진국들도 일찍부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육성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다. 영국의 경우 '창조적 영국'이라는 프로그램을, 독일은 '바우하우스운
동'을 통해 디자인에 대한 의식을 전환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국가적 차원에서 디자인산업 지원책이 시행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되지만, 디자인으로 승부하고 있는
전문 디자인 벤처기업에 대한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디자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미래를 꿈꾸지 않는 경영자들은 디자인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보다 빨리
그리고 싸게'라는 개발연대의 슬로건에 매여 있는 한 세계 일류기업과 당당히 겨룰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다. 일본과중국이라는 경쟁국의 틈에
끼여 있는 한국이 개인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디자인에 역량을 집중해야한다.
<디자인벤처기업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