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거꾸로 가는 정부의 디자인 마인드
거꾸로 가는 정부의 디자인 마인드
건설교통부는 지역표시를 없애고 숫자를 크게 해 올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던 새 자동차 번화판 제도를 철회, 2월 중순까지 또다시 새로운 변호판을 만들기로 했다. 새 번호판에 대해 '촌스럽다'는 비판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전국민이 사용하는 자동차 번호판을 전문가 의견 수렴 한번 없이 확정했던 정부의 무신경이 놀랍다. 그러다가 논란이 일자 열흘 만에 없던 일로 치고, 또 새로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행정편의주의다.
정부 정책에 따라 전국 196개 자동차번호판 제작업소에서 새로운 번호판 틀을 만드는 데 들어간 돈이 10억여원, 또 10일까지 신규 번호판을 신청한 14만명의 차주가 부담한 비용이 17억여원이라고 한다. 1999년 새 번호판 계획을 세운 이후 4년간의 행정 낭비와 소지바들의 혼란은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정부의 디자인 마인드 부재에서 비롯됐다. 글자만 크게 하면 식별력이 높아진다는 초등학생 수준의 디자인 인식으로 새 번호판을 밀어붙인 셈이다. 자동차 번호판에 쓸 수 있는 아라비아 숫자는 글자꼴, 크기, 굵고 가늘기에 따라 수천종이 있다. 이를 번호판 전체 면적과 글자 위치, 여백과 상관관계 등과 함께 고려해 가장 식별력 높으면서도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번호판을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다. 정부는 이를 스스로도 못하고 전문가 지혜를 빌리지도 못하는 이중의 잘못을 저질렀다.
디자인이 국력이란 말이 새삼스럽지 않은 세상이다. 기업 등 민간분야는 시장경험을 통해 배우고 앞서가는데 정부는 뒤쳐져 거꾸로 가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번 일을 정부 각 부처가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일체 인식 전환의 계기로 삼는다면 그나마 들인 돈이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2004년 1월 14일자 사설에서 전제